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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으로 병 치기”

 

아포슬 주일예배

사도행전 13장 20절~23절

김영한 목사님

 

오늘 설교 제목은 ‘병으로 병 치기’입니다.

오늘 제가 하는 이 설교는 제가 처음 목사가 됐을 때 처음 강단에서 했던 설교이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은퇴한다면 이 본문을 가지고 마지막 은퇴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본문입니다.

다윗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가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삼상 16:14-33)

1. 찬양하는 어린 목동

 

삼상 16:18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왕이 되어서, 먹고 살만하니까 또 인생의 모든 것을 다 깨달은 뒤에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어릴 때, 내 미래가 불안하고, 들판에서 아무도 없을 때, 사무엘이 기름을 부으러 왔을 때, 아버지는 ‘이 아이가 기름 부음을 받을 만한 아이가 아니겠지’라고 생각해서 들에 놔뒀을 때도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그 들판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찬양하는 어린 목동,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어린 다윗이었습니다.

 

이 어린 다윗이 그곳에서 무엇을 했냐면,

수금을 탔습니다.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사울이 악신에 들면서 이 악신이 어떻게 떠나갈까 했을 때, 수금을 타는 자를 불러서 ‘그 영성으로 말미암아 귀신을 쫓아내야겠다’하고 그 나라에 오직 유일한 한 명을 불렀고, 그 사람이 바로 목동 다윗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청년들에게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도전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냐면, 그냥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이 악기 연주할 때 악신이 떠날 수 있는 연주자, 여러분이 아이를 가르칠 때 아이가 지식만을 배우는 배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도 배우고 따뜻함도 갖고 지혜롭게 되는 그런 교육자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광주에 있는 개척교회에 갔는데 사실은 저희보다 더 뜨겁고 더 열성적으로 예배하는 교회였습니다.

제가 거기서 성도님 한 분을 만났는데 그 분이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간증이 뭐냐면,

그분은 회를 써는 분이셨는데 교회에 나와서 자신의 삶이 변화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 무엇을 해야되겠습니까’라고 했을 때, 작년 7월에 횟집을 그만두고 12월에 커피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1월에는 본격으로 커피는 파는 것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크게 잘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잘될 때 교만하더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가져가시더랍니다.

그래서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고, 가스가 끊기게 되는 지경에 있을 때, 다시 한번 하나님께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기도한 뒤에 놀랍게 더 큰 기업과 연결이 되면서 커피를 팔 수 있는 CEO가 되게 하셨다라는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커피는 다른 커피와는 달리(커피를 추출하고 대량으로 기업에 넘기는 분이신데) 폴리페놀이라는 성분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5000정도가 나온다면 이분이 커피를 내리면 7000정도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커피를 하루에 세 잔을 마시면 다이어트 효과가 있고 폴리페놀이 실제로 간암에 좋다고 합니다.

일본의 국립암연구센터에서 하루에 한잔에서 세 잔 정도를 마시면 간암에 걸릴 확률이 70%정도 줄어든다고 이야기했고, 고려대에서는 하루에 커피를 세 잔정도 마시면 사망률이 50%정도 떨어진다까지 이야기했습니다.

하버드대에서는 커피를 세 잔정도 마시면 5-7년 정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동일하게 말하는 것은 커피 자체를 마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커피 안에 들어있는 폴리페놀이 그만큼 좋다는 것을 연구결과로 밝혀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커피의 ‘커’자도 모르는 분이 하나님이 마음을 주셔서 회를 썰다가 커피를 만들고 팔기 시작했는데 엄청나게 좋은 요소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해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실험으로 결과를 냈고, 실제로 먹는 사람들이 굉장히 좋은 반응이 보이면서 대기업들과 연결이 되었다는 겁니다.

커피를 내리는데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또 함께 해 주시면서 겸손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을 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이 보이기에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어린 목동과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분이 간증하면서 그런 말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이 이렇게 복을 주시는데, 교회를 많이 도우시고 개척교회니까 어려우니까 많이 도우셔야죠’하니 ‘네 목사님 제가 교회 건물도 나중에 새로 짓고 싶습니다’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이 처음에 내 힘으로 한다고 생각하자마자 거래가 잘되던 회사와 끊기게 되고 다시 무릎을 꿇었을 때 하나님께서 더 큰 기업들과 연결시켜주시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인을 자신이 보았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굉장히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느껴집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부인이 교회를 나갈 때, 교회를 못 가도록 부인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던 사람이었답니다.

‘교회를 가더니 당신이 조금씩 변하고 있어’

<예수는 역사다> 영화와 똑같았다고 하셨습니다.

인터넷에 교회의 부정적인 것, 교회에서 일어나는 안 좋은 기사들을 모아 아내에게 보여줘도 아내가 계속 교회에 나가서 나중에는 교회까지 가서 목사님 설교하시는 앞에서 다리를 꼬고 영화를 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예수는 역사다>라는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자기와 똑같은 남자가 등장하고 똑같이 예수를 믿고 변화된 부인이 등장하고 그러면서 자기도 하나님을 부인하려고 많은 데이터를 찾아봤지만 이제는 오히려 하나님을 고백하는 자신을 보면서 그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남들이 볼 때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주의 임재를 사모한 왕(삼하 6:1-20)

 

삼하 6: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를 굉장히 귀하게 여겼던 사람입니다.

주의 임재를 사모했다는 것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많아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성전으로 모시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이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있었는데 다윗이 이 궤를 가지고 오려고 군인만 3만명을 동원시켰습니다.

그리고 올 때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을 걷고나서 거기서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다는 겁니다.

여러분 요즘 송아지 한 마리가 얼마나 할까요.

5만원 할까요, 50만원 할 것 같습니까.

송아지의 가격이 굉장히 비싸겠죠.

그런데 한 마리씩 여섯 걸음마다 제사를 드렸다는 겁니다.

언약궤가 얼마나 귀중하면 언약궤를 가져오면서 기뻐하며 제사를 드리고 또 제사를 드렸겠습니까.

 

여러분 예배의 시작은 언제부터 입니까.

예배의 시작은 이미 여기 와있어서 시작이 아니라,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내가 오늘 교회에 가서 이렇게 예배를 드려야겠다, 이렇게 섬겨야겠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겠다라는 그 마음을 품고 그것을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 속에 내가 주님과 동행하길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사람의 발걸음이고 그 인생의 걸음입니다.

 

다윗은 사무엘하 7장 2절에 보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자신은 굉장히 좋은 궁에 있는 것 같은데, 하나님의 궤는 휘장 안에, 아직 성막 안에 있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교회를 생각하면서 아픈 구석이 있으십니까.

교회를 생각하면서 눈물이 나고, 교회지체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이 나십니까.

아니면 나는 눈물이 많이 나는 인생이야, 나는 괴로운 인생이야, 이러면서 나 걱정하기에 급급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자신의 근심과 염려, 내가 무엇을 먹고 살까, 내가 누구에게 위로를 받을까하는 삶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전을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전에 거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잘 섬기고 있는가, 이 교회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이 교회가 앞으로 바른 방향으로 갈 것인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공동체인가를 계속 살피면서 마음에 근심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근심은 무엇입니까.

성공하지 못해서? 쾌락을 즐기지 못해서? 인정받지 못해서?

여러분의 근심은 무엇입니까.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나의 과거 때문에? 나의 미래의 불안 때문에?

그것이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호와의 임재와 여호와의 위엄 때문에 여러분께서 근심하면서 여호와의 위엄이 이 공동체 속에 있어야 하는데 나의 삶 속에 드러나야 하는데 그것을 여러분 고민하고 계십니까.

 

3. 찬양과 예배가 넘치는 다윗의 장막(대상 6:31-48/16:4-6.37-43)

1) 다윗은 예배 조직을 정비

- 4000명의 연주자와 288명의 찬양자

2) 다윗의 감사 찬양(역대상 16:7-36)

- 아삽으로 자신이 지은 감사 찬양을 노래

3) 기브온 산당에서 조석으로 번제(역대상 16:40)

- 산당에서 예배

 

세 번째로 다윗은 찬양과 예배에 전념한 장막을 세웠던 인물입니다.

다윗이 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가.

다윗은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왕이 되면 복수를 해야 합니다.

왜요?

다윗이 얼마나 오랫동안 쫓김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고 무시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윗은 왕이 되겠다고 17세에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그가 왕이 된 것은 한참 뒤에 되었습니다.

37살, 약 2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원수갚은 것, 자신의 상처 치유하는 것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예배 조직을 개편하였습니다.

 

예배 조직을 어떻게 개편했습니까.

4000명의 연주자를 세웠습니다.

여러분 4000명의 연주자를 세우려면 대우를 해줘야 하고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악기 연주자가 288명이었습니다.

다윗은 감사 찬양을 역대상에서 하는데, 아삽으로 자신이 지은 감사 찬양을 노래하도록 만들었다는 겁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영역을 아삽을 통해서 하나님께 올려드린 겁니다.

그리고 기브온 산당에서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러분에게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리세요,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하세요라고 하면

‘왜 내가 그렇게 해야합니까’할 수 있겠죠.

하지만 다윗은 스스로가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그때에 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겁니다.

이 산당은 북쪽의 이스라엘 왕 누구도 산당을 패하지 못하였습니다.

남쪽에 있는 왕들도 이 산당 만은 패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히스기야와 요시아 왕만 이 산당을 없앳고 어떤 왕도 이 산당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이 산당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산당을 없애지 못하고 그 산당에서 우상숭배를 했을까.

이 산당은 바로 성공을 바라면서 우상숭배했던 곳입니다.

이 산당은 쾌락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음란하고 쾌락을 즐기는 장소가 산당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가는, 모두가 문화적으로 정착되어있고 모두가 다 인정하는 우상숭배 장소가 산당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선한 왕들도 웬만하게 선해서는 산당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여기 우리 아포슬이 예배를 드립니다.

4층, 2층, 1층, 여기 3층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여러분의 산당은 무너져있습니까.

그 산당을 무너뜨리고 여기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우상, 내가 좋아하는 성공, 내가 좋아하는 쾌락의 우상을 섬기는데는 여념이 없으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껄끄러워하는 사람은 이 곳에 없습니까.

우리가 망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이 산당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성공과 쾌락을 쫓아서 망했습니다.

여러분 술 마시면서 술 값 내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술값만큼 여러분들 감사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담배사는 건 아까워하지 않는데 덜더헌금, 굶어가는 이들에게 몇 천 원주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습니까.

구제하고 선교는 왜 못합니까.

나의 산당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내 산당을 세우는데는 열심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와 그 삶을 위해서 나의 것을 전혀 내려놓지 않으려는 사람, 그 사람이 우리라면 우리는 다윗과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산당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산당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노래방가서 노래하고 맥주마시고 즐기고 술을 마시고 ‘이 정도는 괜찮아. 이건 세상의 흐름이니까, 이건 합법적인거야. 교회사람들도 다 이렇게 놀잖아. 교회사람들도 이렇게 다 행음하잖아. 뭐 어떻다고’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이 시대의 산당을 온전히 세워서 그 산당에서 조석으로 아주 열심히 잘 예배하는 산당예배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산당을 무너뜨렸습니다.

 

질문1. 다윗이 왜? 사무엘보다 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을까요?

삿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삿 21:25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다윗도 우리처럼 연약한 자였습니다.

다윗이 문제가 없었을까요.

다윗은 첫 번째로 밧세바를 범한 사실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했을 때, 우리가 생각할 때는 한 가지만 범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밧세바를 범한 것은 한 계명만 무너뜨린 것이 아닙니다.

 

Ⅱ. 참 회개하는 다윗

1. 밧세바를 취함(삼하 11:1-27) - 6,7,8,9,10계명을 범함

 

간음하지 말라(7계명)

살인하지 말라(6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9계명)

도둑질하지 말라(8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10계명)

 

밧세바를 범하면서 간음하지 말라는 7계명을 어기게 되고,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을 어기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9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다 무너뜨리게 되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음란함과 술 취함과 우리의 영적인 방탕함은 하나의 범죄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 우리가 산당을 무너뜨려야 할까.

왜 우리가 다윗을 닮게 전심으로 주를 예배해야 될까.

그것은 다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윗은 누가 봐도 죄인이었습니다.

 

2. 인구조사(삼하24:1-25) -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인구 조사

 

삼하 24:10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다윗은 또 어떤 죄를 지었습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인구조사를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인구조사가 뭐가 잘못되었을까요.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끝에서 끝까지 인구조사를 하면서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이 정도 세력이 있는 사람이다’

다윗은 허상, 허세에 빠져 버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나는 이 정도의 왕이야.

나의 권위는 대단한 존재지.

그것을 자기의 힘으로 이룬양 조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다윗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 많은 사람을 이것으로 처벌하시게 되는데 다윗이 무엇이라 이야기합니까.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사무엘하 24장 17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범죄 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이것이 리더의 모습입니다.

리더의 모습은 ‘저 사람이 잘못했어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내가 잘못 생각했고 내가 명령을 내렸고 이 지경에 빠진 것이 나의 잘못입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참 리더와 하나님이 받으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어르신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했습니다.

섬기면서 한 지체가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사이코패스의 질문을 보게 됐는데 그 질문을 보면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답니다.

자신이 못생긴 것이 아니라 거울이 자기를 잘 못 비춘다고 화를 낸답니다.

자기가 아니라 거울에게 화를 내는 것이 싸이코패스랍니다.

우린 어떻습니까.

저는 거울을 보면 정확하게 이야기합니다.

얼굴이 문제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아니라구요?

아직 괜찮다구요?

패스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관에, 시대에, 국가에, 교회에, 어떤 공동체에 욕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신!천!지!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저는 신천지에서 오신 분들이 아포슬에 백여명 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 백명이 넘을 수도 있구요.

제가 이번 주에 경산에 있는 교회 한 곳에 탐방을 갔습니다.

그 교회는 500명의 성도였는데 신천지가 200명이 들어와 있었다고 합니다.

500명에 신천지가 200명이 있으니까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우리 아포슬 1층부터 4층까지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신천지가 몇 명이 들어와 있을 것 같으십니까.

그분이 그러셨습니다.

자신의 교회가 그때 타겟이었는데, 대구에 주요한 교회 다섯교회가 타겟이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 중의 한 교회가 대구동신교회라는 겁니다.

왜요!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분란을 일으킬 일이 생기면 신천지는 가만히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깨어지면 신천지가 붙어서 부채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지, 비리가 더 많을거야. 네가 참으면 안돼.

네가 그렇게 있으면 안돼. 고소를 해야 돼’

그래서 그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은 신천지에게 한번에 30건의 고소를 당했습니다.

매일 법원에 가야 하는 지경에 빠졌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잠잠할 때는 신천지가 가만히 있지만 교회가 어려워 지면 신천지들이 엄청나게 일어납니다.

25명 중에 한 명은 신천지입니다.

여러분에게 커피 사주겠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이쁘다 하는 사람은 다 신천지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제가 눈이 작지만 보일 건 다 보여요.

여러분은 아니예요.

오직 주님의 호의만 오직 주님의 은총만 받아야 할 분들입니다.

봄날을 기다리지 마세요.

봄날은 다 지나서 이제 여름이예요

외롭지 않아요.

뜨거우면 시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 여기서 짝 찾지 말고 주님과 함께 저와 같이 청년 부흥에 기여하세요.

오늘 결혼 축복하는 세 커플까지는 제가 용납하겠습니다.

25명 중에 한 명은 신천지 아니면 사이코패스입니다.

쓰리쿠션으로 여러분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저는 알게 됐습니다.

여러분을 정말 좋아하는 형제님은 여러분에게 고백하지 않습니다.

제가 대구에 10년 동안 있으면서 알게 된게 있는데 자매님들이 이야기해서 알게되었습니다.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한 명도 자기에게 고백한 분은 없다는 겁니다.

대구의 남자는 자매가 결혼한다고 앞에 나왔을 때 ‘정말 사랑했는데’라고 눈물 흘리고 저에게 문자가 옵니다.

저는 그런 문자를 자주 받습니다.

오늘은 세 커플이니까 세명에게 오겠군요.

대구에 있는 남자는 사랑해도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신천지가 많습니다.

남자분들! 누가 좋아한다고 하면 저에게 먼저 이야기하세요.

저희는 신천지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대부분 체크를 해 놓고 계속해서 감시하고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저희 교회에 처음 왔는데, 서울에 올라가는 한 자매가 그 초신자에게 잘 해주라며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초신자가 와서 처음 예배를 드리고 너무 좋다는 겁니다.

그리고 여자리더가 태워주니까 그 리더에게 밤이 늦었다고 같이 자자고 하는 겁니다.

그러더니 밤을 새서 제 욕을 하는 겁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처음오면 선물도 주는데...

그 신천지는 너무 빨리 욕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처럼 몇 년 뒤에 욕을 해야 들통이 안 나는데.

오자마자 교회 욕을 밤새도록 한 겁니다.

그래서 그 리더가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 처음 왔다는데 너무 교회 말을 들으면 안되고 목사님 말은 틀렸기 때문에 하면 안된대요’

그래서 제가 서울에 올라간 그 친구가 부탁을 했는데 어떻합니까.

그런데 서울에 올란간 그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연락을 해보니까 그 친구가 신천지라는 겁니다.

그 교회에서도 신천지로 보고 있는데 그 초신자도 그 주 이후에 다시는 안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천지, 너무 빨리 욕하면 걸려요.

좀 똑똑하세요.

우리 공동체에는 신천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천지는 큰 교회도 5%, 작은 교회도 5%입니다.

똑같이 보냅니다.

신천지 맞아요?!

네 맞답니다.

말을 못하잖아요.

‘다대오지파에서 오셨나요’ 하면 깜짝 놀랩니다.

신천지가 여기 엄청나게 있습니다.

 

3. 사울의 범죄

1) 길갈에서의 범죄(삼상 13장) -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제사 함

2) 아말렉과의 전쟁 중 범죄(삼상 15장) - 아각 왕과 양과 소들을 죽이지 않음

 

사울도 죄를 지었습니다.

사울은 길갈에서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제사하였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 중에 아각왕과 양과 소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게 왜 죄가 되냐면,

하나님은 아각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양과 소들이 포동포동 살이 쪘지만 제사를 드리지 말고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면 좋잖아. 하나님께 좋은 것 드리면 좋지 않아?’

그런데 그게 함정입니다.

예를 들어서 헌신하라 했을 때 그 순간 헌신하고 그 순간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데

‘돈이 있을 때 드리지. 내가 좀더 생각해보고 드리지. 나중에 드리지’

이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기다릴 때는 하나님이 기다리라고 하는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결혼도 그렇고 취업도 그렇고 대학도 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잘 기다려야 합니다.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그리고 신앙은 즉시 순종입니다.

죽이라 하면 아각왕을 죽이고, 양과 소 좋지만 하지만 그것이 내 소득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지, 하나님이 나중에 남겨둔 것, 불순종하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재물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질문 하나 드립니다.

질문 2. 왜 다윗과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울은 죄를 짓고도 ‘너 회개 해야 돼’라고 할 때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것이 사울이었습니다.

다윗은요.

‘주님, 저 양들이 저 백성들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접니다. 책임은 제가 져야 합니다’

이것이 다윗과 사물의 차이였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이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니’ 그것 때문에 우리를 심판하시면서 ‘너는 나와 무관한 자야’ 라고 이야기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어보시는게 무엇이냐면, ‘너 얼마나 열심히 회개할래, 얼마나 뉘우칠래. 얼마나 돌아설래’

여러분 그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제가 여기서 ‘술마시지마!’라고 이야기하면 여기 있는 신자들은 ‘한 두잔이 뭐 어때’ 라고 합니다.

하지만 초신자 나눔을 하면, 초신자 리더들이 이야기합니다.

초신자들이 제가 이렇게 설교하면 ‘저 오늘부터 술 안마시기로 결심했어요’이렇게 이야기 한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와서 이렇게 이야기한답니다.

‘저 또 마셨어요’

그런데 너무 기쁜게 무엇이냐면,

기존의 신자들은 ‘마시면 어때. 뭐가 잘못됐는데’라고 하는데

초신자들은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는 ‘안 마실거예요’ 하고 다음 주에 와서 ‘또 마셨어요, 안 마실래요’합니다.

이것이 너무 이쁜거예요.

하나님이 보실 때도 똑같습니다.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돌이키고 있니, 얼마나 후회하고 있니, 나를 보면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뻔뻔하게 ‘나만 죄 지어요? 저 사람도 죄 지어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 다윗처럼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이고 거짓증거를 하고 그 계명들을 어겼지만 ‘제가 죄인입니다’하는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다윗은 이러한 인물이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주님을 바라보는 인물이었습니다.

 

Ⅲ. 고난 중에도 주님을 바라보는 다윗(삼상 17-31장)

1. 사울의 미움(심상 17장)

삼상 18:7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울은 다윗을 굉장히 미워했습니다.

사울의 미움을 받은 사람이 다윗입니다.

사울이 누구였냐면, 장인어른이었습니다.

장인어른이 여러분을 미워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시부모님이 여러분을 미워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을 사랑해야 할 사람이 여러분을 미워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했을 때 사울이 시기가 났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자신의 모든 시간을 다 쏟고 모든 군병들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엔게디 굴과 십 광야 앞에서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24잘 12절에는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여러분 교회 안에, 인생을 살면서, 학교 안에서, 사회생활에서 여러분과 적대시하고 여러분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죽이지 마세요.

피 흘리지 마세요.

원망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이 고백이 우리 안에 있어야 다윗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아들 압살롬의 반역(삼하 15:10,13,14)

 

아들이 반역했습니다.

사울만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식이 자기를 죽이려고 합니다.

견딜 수 있습니까.

아마 여러분 중에서 부모님을 원망하고 시기하고 저주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저주하고 원망하면 안됩니다.

부모님도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해 주라고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이 더 보완해주라고 더 보살펴주라고, 여러분들을 더 건강하게 더 젊게 만드시고 부모님을 봉양하라고 여러분을 뒤에 보내주신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여러분의 자녀가 또 괴롭힌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은 자녀를 미워하면 안됩니다.

다윗은 아들이 반역했지만 압살롬을 사랑하였습니다.

 

3. 시무이의 저주 (삼하 16:7,8)

삼하 16:7-8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아주 하찮은 시무이가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다윗을 개취급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무엇이라 고백하냐면,

 

삼하 16:12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여호와께서 선으로 갚아 주시리라”

 

저 저주를 하나님 내가 참습니다.

하나님 나의 원통함을 감찰해주세요.

하나님 선으로 갚게 해주세요.

저 무지함을 저 악한 말을 저 조롱하는 말을 선으로 갚게 해 주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질문3. 왜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이 오는 것일까요?

 

17살에 하나님이 다윗을 부르셨는데 왜 나이가 들어서 37살에 왕이 되게 만드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든 독을 빼기 위해 우리를 광야로 보내십니다.

‘나는 왜 이런 인생을 삽니까’라고 눈물을 흘립니다.

눈물이 수돗물처럼 철철 흘러나옵니다.

내 안의 상처, 불만과 원망과 모든 말들이 다 빠져 나옵니다.

제가 적은 글을 하나 읽어 드릴게요.

 

하나님은 때로 기다리게 하십니다.

힘이 들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간입니다.

그 기간이 아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간을 통해 내 속에 독을 빼십니다.

나를 준비시키시고 성숙하게 하는 과정의 때입니다.

상처와 고통의 시간을 지나며

인내의 비밀을 배우도록 주신 때입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을 잘 통과하여 준비된 자가

사명의 길을 걸을 동안 제대로 참고,

주어진 영혼을 사랑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을 빼시고 우리를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다윗의 인생을 다섯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1) 베들레헴: 어린 목동(17세)

2) 기브아: 궁에서의 생활(17세-23세)

3) 아둘람: 고난의 동굴(23세-30세)

4) 헤브론: 작은 도시 왕(30세-37세)

5) 예루살렘: 시온 성에서 통치(37세-70세)

 

베들레헴에서 어린 목동으로 있을 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궁에서 사울의 밑에서 생활을 하였는데 사울이 창을 던지면서 죽이려 합니다.

궁궐을 빠져나와 고난의 동굴 속에서 광야의 길을 23세에서 30세,

그리고 작은 도시에 가서 왕이라고 할 수 없는 초라한 헤브론으로 갑니다.

30세에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보암직한 왕이 예루살렘에서 기브아에서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묻습니다.

사무엘하 2장 1절에 ‘하나님 제가 올라가리이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니 너 내려가’

‘어디로요?’

‘헤브론으로’

‘하나님 헤브론으로는...’

‘내려가라니까’

‘네!’

그래서 간 곳이 헤브론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7년 반 동안 있을 때 이스라엘 열 족속들이 다 무릎을 꿇고 피 하나 흘리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시온성에서 통치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피 흘리면서 남들과 경쟁하면서 그러면서 승리할 수 있고 내 자리에 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오늘 제목이 ‘병으로 병 치기’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왜 병을 주셨는가.

우리의 영적인 병을 고치시기 위해서 병을 주셨습니다.

왜 아픔을 주셨느냐,

영적인 병을 고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픔을 주신 겁니다.

상처를 왜 주셨느냐,

영적인 병을 고치시기 위해서.

우리의 병은 아픈 병과 같이 그것을 통해서 나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 있는가 다시 볼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유학할 때, 지금 제가 40중반을 넘어서고 있지만 저보다 더 어린 분이 한국에서 펀드 매니저를 하면서 아버지도 모를 만큼의 돈을 많이 벌고 벤쿠버에 와서 대 저택을 사고 차를 사고 자녀들에게 좋은 학교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무 직업이 필요 없습니다.

이분은 평생 아무 직업이 필요 없습니다.

펀드 매니저로 엄청난 돈을 끌어다가 거기에 투자하였는데 그게 대박이 난 겁니다.

평생 돈을 벌 필요가 없습니다.

같이 야구를 하는데 직업이 없다는 겁니다.

그분이 야구를 잘 못하는데 왜 야구를 하는 거지?

알고 보니 뇌에 종양이 크고 있는데 수술을 할 수 없는 그곳에 계속해서 종양이 커지면서 아픈몸으로 운동을 하고 계셨던 겁니다.

같이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그분이 우리에게 고기를 사주고 웃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그분이 병상에서 너무 고통스러워 눈물을 흘리면서도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그분이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육신에 가시를 주셔서, 질병을 주셔서 그것으로 나의 영적인 질병을 고치셨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육체의 질병을 안 좋은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저의 교만한 영적인 저를 깨우고 고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병과 고통과 고난을 주실 겁니다.

긴 인생의 터널을 지나가게 하실겁니다.

왜요.

그 병으로 여러분의 영적인 병을 고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잠시 내 안에 있는 독을 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윗처럼 연단하시고 다윗처럼 20년 이상을 괴로운 인생을 살도록

내 뜻과는 상관없는 인생을 살도록

그래서 37세가 되어서야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예루살렘에서의 통치를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셨지만

우리에게는 지나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거쳐야 할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무엇인가.

인생의 광야의 길입니다.

그 광야에서 독을 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는 빼야 될 독이 있고, 빼야 될 악이 있고, 빼야 될 상처가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다 빼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사모하고, 주님을 사모하고, 사람에게 위로를 구하지 아니하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외눈박이, 주님을 사랑하는 아포슬 여러분 한분 한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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