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53 추천 수 0 댓글 0

“방탄 제자단”

 

아포슬 주일예배

사도행전 16:1-14

김영한 목사님

 

오늘 설교 제목은 방탄 제자단입니다.

방탄 소년단이 있죠.

영상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방탄 소년단을 저도 처음 들었는데 빌보드에서 1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포슬에도 어마어마한 방탄 제자단이 있습니다.

1팀-7팀, 기신자팀을 책임지는 방탄제자단이 있습니다.

 

방시혁이라는 사람이 방탄 소년단 멤버를 한 명씩 봤을 때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각자의 개성을 어떻게 개발 할 수 있을까 해서 만든 그룹이 BTS(방탄소년단)입니다.

방시혁이 봤을 때 한명 한명의 사람들이 가능성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세상에 하나의 재능을 갖춘 사람들로 음악을 할 수 있을까 해서 만든 그룹이 이들입니다.

사실 방시혁도 방탄소년단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해질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을 그룹으로 만든 이유가 무엇이냐면, 단순히 똑같은 연예인 그룹처럼 음반을 만들어내고 판매하고 수익을 올리는 구조의 사람이 아니라, 방시혁이 원했던 것은 아티스트! 이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그대로 표출하는 가수!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녹여서 음악으로 소통하는 그룹을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아마 통하지 않았을까라고 자신이 분석을 하는겁니다.

 

방탄소년단이 처음 나왔을 때 학교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펼쳐나갔을 때 ‘왜 구시대적인 옛날이야기를 갖고 왜 다시 복고풍으로 가느냐’라는 이야기도 들었답니다.

그러나 방시혁은 방탄소년단의 나이, 생각... 실제로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펼쳐보이는 것이 가장 진정성이 있고 가장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결국 많은 사람들과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단한 스타가 아니라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가수들을 만드는 것이 방시혁 프로듀서의 꿈이었다고 합니다.

 

Ⅰ. 방탄 제자 디모데로 세우기

1. 바울의 제자? 방탄 디모데

 

오늘 본문에 보면 방시혁과 방탄소년단과 같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1절 말씀을 볼까요.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1절에 보면 바울이 나오는데 바울은 복음에 미쳐있는 사람입니다.

복음으로 살아가고 복음 때문에 핍박받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어디로 가냐면, 더베와 루스드라에 다시 이르게됩니다.

그때 디모데라는 사람을 만나는데, 디모데가 처음부터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방시혁이 방탄소년단을 만났을 때 그 사람들이 모두가 다 가수고, 모두가 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처음부터 하지 않은 것처럼 디모데도 처음에는 그냥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눈에는 이 디모데가 하나님 앞에서 재능을 갖고 복음을 위해서 쓰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 이 디모데를 만나서 제자로 만듭니다.

 

그런데 사실 디모데를 봤을 때 디모데의 배경은 유대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헬라인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유대 여자였으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데모데란 사람을 제자로 받아들였을 때 적지 않을 유대인들의 공격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라는 한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가치 때문에, 가능성 때문에 제자로 삼게 됩니다.

이런 제자를 만나기 위해서 바울이 한가지 놀라운 것은,

1절에 루스드라는 지명은 지금은 2차 전도여행을 하고 있지만 1차 전도여행때 돌을 맞고 핍박을 받았던 장소입니다.

바울이 다시 핍박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주저 없이 가서 만났던 사람, 어린 디모데를 보고 가능성을 갖고 제자로 키웠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온지 얼마 안 된 사람도 있지만 온지 얼마 안 된 사람을 제자로 삼는 것이 우리에겐 필요하고 내가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했다라고 하면, 내가 누군가를 제자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어린아이 신앙이 아니라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사람을 놓고 기도하고 양육하고 그 사람이 잘 서도록 하는 것을 원하실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걸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감각을 가지고 센스를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를 보고 제자를 삼았고 가능성을 보고 그의 약점을 묻어두고 함께 동행하며 사역하였습니다.

 

2. 디모데의 특징? 칭찬 받는 자

 

2절 말씀을 보면,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디모데는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성숙한 디모데는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는데,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사람들,

즉 바울을 배척했던 사람이었던 그들이 디모데에게 칭찬을 했다는 겁니다.

영적인 스승이 인정받지 못한 곳에서 디모데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는 없으나 노력을 해야 합니다.

데모데의 칭찬은, 가만히 있어서 받는 칭찬이 아닙니다.

우리 아포슬 중에 칭찬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교역자들도 칭찬을 받습니다.

누가 칭찬을 받을까요.

왜 바울이 받지 못한 칭찬을 디모데가 받았을까요.

 

3. 사역 전 갖추게 한 것?

1) 할례 행함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3절 말씀을 보면, 디모데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떠나려 할 때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그 유대인들은 굉장히 배척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합니다.

할례는 남자의 성기에 표피를 베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시행하면 통증이 있고 창피하기에 할 필요가 없는 디모데였지만 바울이 ‘너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유대인을 위해 불편한 수술을 받자’ 했을 때 기꺼이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인으로서 받지 않아도 될 할례를 디모데가 받았습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것, 하나님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이냐면,

내 기준과 내 판단 내 틀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많은 분들 중에서 자기 틀과 자기 스타일, 자기가 원하는 부류의 사람, 좋아하는 스포츠, 패션, 음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계속 고수하는 것이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또 주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내가 그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의 판단기준을 그것이 비진리가 아니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내가 나의 어려움 가운데서 수용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아포슬에 많은 새로운 새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새가족은 섬기고 있는 리더에게 욕을 하고, 교회가 맘에 안든다고 이야기 합니다.

자기가 이미 모든 것에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는 많은 문이 있습니다.

언제든 나가셔도 됩니다.

저희는 강요하지 않습니다.

교회와서 등록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결혼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아무하고 결혼하지 않죠.

자신과 맞는 교회가 있습니다.

자신과 맞는 교회에가서 신앙생활 하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교회에 가서 다 나에게 맞춰라.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으니까 너희가 다 틀렸다고 하면 그 사람이 틀린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어느 교회도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어떤 리더도 완벽한 리더는 없고 어떤 지체도 완벽한 지체가 없습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그 사람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요구했을 때 ‘내가 할례를 받겠습니다. 내가 당신의 말을 듣겠습니다. 내가 당신이 불편하다면 참아보겠습니다’하는 모습이 있어야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에게 칭찬을 받으려 하십니까.

하나님에게도 칭찬을 받아야 하고 여러분 주위에 있는 지체들에게 받아야 합니다.

2절에 디모데가 칭찬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냐면,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이었습니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지체들에게 인정 받는 사람이 결국 하나님에게 인정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리더에게만 인정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내 옆에 있는 지체, 나와 함께 있는 가정, 학교에 있는 사람들, 직장에 있는 사람들, 세상 사람들이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참 제자로서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할례를 감내해 내야 한다는 겁니다.

 

2) 작정한 규레를 지키게 함

 

4절 말씀을 볼까요.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디모데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주고 지키게 한 사람이고 자기도 지켰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나만 말씀을 전하는 자가 아닙니다.

성경읽으라 하고 나는 성경을 읽지 않는다?

덜더운동하세요 하지만 덜더운동을 내가 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새벽을 깨웁시다. 휴지를 주웁시다. 정직합시다라고 이야기하고 내가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칭찬 받는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규례를 지켜야 합니다.

규례는 헌법이 아닙니다.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에서 만들어진 것이 규례입니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우리가 이 정도의 규례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피를 먹지 않고 음행하지 않고 목매어 달아 죽은 것을 먹지 않고.

회의에서 몇 가지 이런 것을 지킨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좀 더 온전해지지 않을까, 우리가 공동체가 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해서 만든 것입니다.

 

아포슬에도 규례가 있습니다.

이것은 헌법이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가 좀 더 건강하고자 만든겁니다.

예를 들어 3시 50분에 3층, 4층에 가지 마시고 2층으로 가십시오.

이것이 규례입니다.

헌법이 아닙니다.

안 지키셔도 됩니다.

4시에 들어와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보여줍니다.

‘4시가 되었으니 내가 늦었으니, 3층과 4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2층으로 가자. 다음에는 일찍 와야지’ 하는 것이 규례입니다.

음료수도 문제가 없습니다.

음료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더 온전하게 드리고 옆사람에게 커피를 쏟지 않고 옆사람도 그것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성숙을 보여주는 겁니다.

예배 전에도 머리를 감고 오는 것.

일주일동안 입었던 옷도 좀 내려놓고 깔끔하게 오세요.

왜 그럴까요,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입니다.

우리 형제님들은 자매들의 노출된 것에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에게 유혹을 받지 않을 만큼 옷을 입는 것이 배려입니다.

디모데는 작정 된 규례를 지키려고 하고 전달하는 자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전달만 하는 자 입니까. 전달한 것을 지키려고 노력합니까.

요즘 신앙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법도, 믿음의 말씀...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웬만큼 교회를 다니지 않은 사람도 무엇이 선인지, 누가 정직한지, 어느 정도 규범과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내가 지키게 하되 나도 지키려고 노력하는가 그것이 얼마나 성숙했는 지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Ⅱ.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탄 스승 바울

1. 방탄 스승에게 일어난 문제?

1) 아시아에서 일어난 비극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이제는 방탄 스승, 바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스승 바울은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이 스승에게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디모데에게 있어서 문제가 무엇이냐면 권위에 순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받고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할례를 받는 것이 어려움이었습니다.

방탄 스승은 어려움이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방탄 스승이 어려움을 겪고 이겨내자 방탄 제자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리더는 항상 어려움을 겪으면서 잘 풀어가야 합니다.

그것을 본 제자가 진짜 제자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1팀에서 7팀까지 기신자, 초신자팀이 있습니다.

각 팀별로 다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리더의 성격, 리더십, 리더의 방향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기 오늘 보이는 바울의 리더십, 바울이 헤쳐나갔던 어려움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아시아를 사랑했습니다.

아시아는 지금 우리가 있는 아시아가 아닙니다.

예전의 아시아는 터키 이스탄불 쪽 지역입니다.

지도를 한번 보여드릴게요.

갑바도기아, 비두니아, 갈라디아 옆에 아시아가 있습니다.

바울이 가장 사랑했던 땅입니다.

바울은 시리아 밑에 예루살렘, 이스라엘 땅입니다.

사실 사도바울의 고향은 아닙니다.

바울이 사랑했던 땅은 아시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는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면 안돼’

‘바울아 넌 여기에 있으면 안돼, 넌 다른 곳으로 가야해’

사도바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아시아와 저 터키 땅이 마음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셔서 서쪽인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가야겠다고 바울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구상한 것이 무엇이냐면 7절 보겠습니다.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 앞에 와서 열리지 않자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거기도 아니야, 네가 생각한 거기도 아니고 네가 생각한 아시아도 아니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도를 보며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릴게요.

처음에는 아시아에 머물고자 했습니다.

아시아에 있고자 했으나 하나님이 아니라 하셨고 갈라디아, 비두니아 북쪽으로 가고자 했으나 거기도 아니라 하셨습니다. 남쪽도 아니라 하셨습니다.

‘그럼 어디입니까 하나님’

‘네가 마음에 두지 않는 땅, 너는 거기 가야 해.’

거기가 어디일까요.

 

3)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8절 말씀 보겠습니다.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갔습니다.

 

2. 밤에 환상?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그리고 9절에 보면 자기가 원하지 않는 드로아 땅으로 잠깐 움직이는데 마게도냐 사람, 유럽사람이 손짓을 하면서 도우라고 말을 합니다.

전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그 사람에게 가서 도우라는 환상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의 성숙함을 8절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8절에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드로가 어디냐면, 바울이 좋아하는 동쪽과 북쪽 땅이 아닌 서쪽으로 마게도냐 쪽으로 하나님이 막으셨기 때문에 다른 쪽 방향으로 틀어서 걸었던 겁니다.

그 내려가는 찰나에 하나님께서 ‘어! 순종하네, 내가 원하는 서쪽 땅으로 움직였어’

그날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였습니다.

내가 생각하지 않는 그 땅으로 조금 움직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같으면, ‘이 땅도 안돼요? 그럼 저 사역 안합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섬겨야지. 내가 원치 않는 것을 이야기하십니까. 저는 듣지 않을 겁니다. 내가 원하는 땅이 아니면 됐습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해서 드로아 지방으로 갈 때 밤에 환상을 통해 마게도냐 사람 한 사람을 보여주면서 오라고 하신 겁니다.

그래서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이렇게 열립니다.

 

지도를 한번 보여드릴게요.

안디옥에서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거기서 디모데를 만난 뒤에 바울이 이 땅을 더 섬기고 싶은데 하나님이 열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 곳이 드로아였습니다.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에서 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네압볼리 그 위에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고린도, 아덴, 에베소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쭉 내려가는 겁니다.

그런데 내려갈 때 잘 보십시오.

에베소에서 자기의 고향이 저기 중간에서 약간 왼쪽, 더베 옆이 다소입니다.

거기가 자기 고향인데 자기 고향에도 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에베소에서 바로 가게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의 여정에는 자기의 사심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자기의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방탄 스승이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 왜 저를 여기에 두셨죠?

저는 이해를 못해요. 하나님 저는 상상할 수 없어요.

하나님 잘못 판단하셨죠.

제 인생에서도 캐나다 유학하면서 석사에서 박사들어가는 과정에 어떤 좋은 교회에서 오라는 청빙이 있어서 거기 가려하다가 하나님께서 갑자기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사인을 주셔서, 예언을 하는 분을 통해서 한국에 갑자기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들어왔을 때 제가 청년부를 섬길 줄 알았습니다.

외국에서 청년부를 했기 때문에, 그런데 영어예배를 했습니다.

영어예배를 5년 하면서 하나님 왜 제가 이것을 하고 있죠?라고 많이 여쭤봤습니다.

그리고 청년부를 맡았습니다.

청년부를 맡으면서도 왜 하나님께서 내 인생 가운데서 그렇게 인도하시고 왜 하나님이 나를 대구 땅으로 보내셨지?

나는 대구가 고향도 아니고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땅에 왜 하나님 나를 여기에 두셨지?

 

그런데 어느날 예언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구에서 예언하는 사람이 많은 걸 예언해 주었는데, 그 중에 여러분과 나눌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이냐면 그 예언 가운데 이 내용이 있더라구요.

어떤 말씀을 하셨냐면, 하나님이 저를 이 대구 땅에 두신 목적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경륜 속에 하나님의 시간 속에 계획 속에 저를 이 대구 땅에 두신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저는 하나님의 실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한번도 대구에 내려와 본 적도 없고, 대구 사람을 알지도 못했고, 만약에 제가 대구 사람에 대해서 알았으면 절대로 오지 않았겠죠. 네!

절대 이 무서운 곳에 않았겠죠.

1800명에게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는 분들.

저는 대구에 10년 있었지만 아직도 대구 사람을 잘 몰라요.

하나님 저를 왜 여기에 보내셨죠? 많이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이 실수 하신줄 알았습니다.

저는 실수로 여기에 계속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해 주시는데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여러분이 방탄 스승이 되도록 여러분을 혹독하게 여러분들을 다루시는 겁니다,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 이거 왜 안됐습니까. 하나님 왜 내 생각대로 안됩니까. 하나님 왜 포기하기 만드십니까. 왜 재정적인 문제를 주십니까’

교회를 처음 오신 분도 계시겠죠.

‘하나님 왜 저를 이런 교회에 보내셨나요’ 그럴 수 있겠죠.

그렇지만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불러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그 넓은 계획을 보시면서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겁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할례를 받으면서 사역을 잘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도를 만났을 때는 할례를 행하지 않게 합니다.

디도도 헬라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디도에게는 왜 할례는 안하고 디모데에게만 했습니까.

그런데 디도가 언제 쓰임을 받냐면 예루살렘에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고 사역을 하고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사람 가운데 바울이 누구를 데려오냐면 할례를 전혀 받지않은 디도를 데려와서 ‘봤지? 디도야. 엄청나지? 할례 받지 않아도 엄청 사역할 수 있고, 엄청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헬라인인데 하나님을 엄청 사랑하지?’

전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시고

너희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려고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행하면서 가장 문제가 있는 가장 극심한 문제가 있는 고린도 교회에 디도를 보냅니다.

예루살렘에 디모데를 보냅니다.

왜요?

적절하게 디도가 가야할 곳, 디모데가 가야할 곳.

그래서 고린도에 디도가 가니까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 해결된 문제가 고린도 전서와 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누가가야 합니까. 디모데가 가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 왜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행하시고 나에게는 행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 저 사람은 결혼하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성적 받고 좋은 대학가는데, 돈 잘 버는데, 저는 건강이 왜 이렇습니까.

안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주 작은 사람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오늘 방탄소녀도 등장하는데, 루디아라는 옷감장수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12절 말씀 보겠습니다.

 

2. 교회 개척 스토리?

1) 빌립보에 이름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빌립보에 이르어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붙여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13절에 보면, 안식일에 기도할 곳도 없습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그리고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인물들을 키워내서 디도도 만들고 디모데도 만들어 냈는데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은 여자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하나님이 마게도냐 가면 된다면서요?

갔는데 남자들이 아니라(당시에는 남자들이 모든 것을 다 하잖아요) 여자들만 눈 앞에 있는 겁니다.

그것도 장사하는 여자.

똑똑하지 않고 지도자 계층이 아닌 장사하는 여자.

그런데 14절 말씀을 볼까요.

 

3. 자색 옥감 장사 루디아를 통해?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두아디라의 자색 옷감 장사인 루디아를 통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고 루디아를 통해서 교회를 개척하게 합니다.

그래서 유럽의 첫 번재 교회인 빌립보 교회가 남자에 의해서 정치인에 의해서 사업가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미천하다고 여겨진 여인에 의해서 세워지도록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큰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기도 하지만 여러분 한명 한명을 통해서도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아픔이 있습니까. 상처가 있습니까.

하나님 나를 통해서 역사하신다구요?

무슨 재능이 있는데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어떤 상처가 있는데요?

지금 빠져나오지 못하는 죄와 중독이 있고 우울감이 있고 좌절감이 있고 낙망감이 있는 나를 하나님 어떻게 사용하신다구요?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울에게 보여주셨죠.

너가 마게도냐에 가면 대단한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아니야. 루디아를 통해서 나는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펼쳐 보이는 것을 바울에게 알게 하신 겁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같은 존재를 이 예배당에 1층~4층에서 왜 예배드리게 하십니까.

나 같은 존재가 사용 받아야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능력이 있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난다는 겁니다.

뛰어난 사람, 놀라운 사람이 사용을 받을 때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실수투성이, 나 같은 존재감이 없는 사람 나 같은 상처받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하나님을 드러내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루디아 같은 존재일 수 있습니다.

디모데처럼 배경이 안 좋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은 왜 이렇습니까. 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 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고 원하지 않는 마게도냐로 나를 보내십니까.

왜 나를 이렇게 인도하십니까.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어떤 분이 연락이 왔습니다.

모르는 분인데 모르는 분을 좀 도와달라는 겁니다.

저희 교회가 좀 도와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냐면 군위에 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목사님이 기도를 하시면서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부담을 주시면서 선포하셨대요.

군위교회에 7명이 있대요.

전부 어르신들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성가대를 세우고 싶은데 성가대 전공 지휘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부담감을 주셔서 이건 미친짓이고 말하면 비웃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우리 교인들도 비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탁드립니다.

주위에 성가대를 지휘할 수 있는 전공자가 있다면 좀 보내주세요.

저도 말씀 드리면서 창피하고 부담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부담감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 아시죠라고 이 목사님이 무어라 말씀하시냐면,

2015년에 하나님 반주자를 주세요.

시골교회에 7명밖에 없는데 반주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했고, 2017년부터 반주자가 와서 반주를 하고 있는게 그 사람이 어디서 오냐면 해운대에서 온다고 합니다.

부산 해운대에서 매주 오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이 성가대 할 사람이 없는데 어르신들을 데려다가 성가대 할 지휘자를 보내어 달라고 선포하라고 말씀하셔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차비나 수고비 전혀 줄 수 없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가라고 감동주시는 분이라면 이곳에 올 줄 믿습니다.

주위에 그런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고 보내주세요.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번주 오늘은 외국에서 사역하는 목사님을 초빙해서 부흥집회하고 있답니다.

성도가 고작 10명도 안되는데 외국에서 유명한 목사님이 오셔서 부흥집회를 한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요.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는 재능이 없고 배경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는 능력이 없고 성격이 이래서 안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군위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지 말라는 겁니다.

너희 교회도 다른 교회처럼 반주자가 필요해.

반주자가 와 달라고 외쳐야 돼.

너희 교회가 작지만, 시골교회지만 여기에도 성가대를 통해서 내가 영광을 받아야 되니 너는 선포하면 되는 것이야.

하나님은 우리르 다르게 부르십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계산과 다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그 길을 하나님의 길로 알고 가야합니다.

거창 고등학교 10계명을 보여드릴게요.

거창 고등학교는 졸업하기전에 이 원칙을 갖고 인생을 살라고 이야기 합니다.

 

<거창학교 직업선택의 10계명>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느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춰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시는 것과 여러분이 여러분을 보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여러분은 연약하지만, 무가치한 존재같지만 하나님이 보실때는 너무 이쁠 수 있습니다.

너무 괜찮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죄 지을 건대요. 하나님 또 원망할건대요.

그래도 너는 내 자식이니까.

너는 방탄 제자단이 될 것이니까.

방탄 소녀가 되고 방탄 제자가 되고 마침내 처음 시작은 미약했지만 나중엔 엄청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보면서 지금 너를 보고 있는거야.

조금 더 성숙하면 돼.

조금 더 기도하면 돼.

조금 더 내 앞으로 나오면 돼.

조금 더 깎이면 돼.

 

넌 정말 엄청난 사람이야.

넌 엄청난 존재야.

주님이 우리를 보시고 흐뭇해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달려가서

주님 나 같은 자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나 같은 사람을 통해서 교회를 개척하게 하여주시고,

나 같은 사람을 통해서 교회를 짓게 하여주시고,

선교지를 세우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수 많은 영혼들을 추수하는 그런 사람으로 삼아 주십시오.

그렇게 소망하는 자, 갈망하는 자, 우리 자리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찬양하면서 나아가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14 2019.08.15 "에스겔22:1-16 김수경 2019.08.16 57
113 2019.05.30 "역대상 29:1-19" 김수경 2019.05.30 87
112 2019.02.15 "히브리서 11:6" 김수경 2019.02.20 138
111 2019.01.02 "누가복음 5:5~6" 김수경 2019.01.03 137
» 2018.06.03 "사도행전 16:1~14" 김수경 2018.06.07 353
109 2018.05.13 "사도행전 13:20~23" 김수경 2018.05.24 181
108 2018.04.22 "사도행전 9:10~22" 김수경 2018.04.27 153
107 2018.04.15 "사도행전 9:10-22" 김수경 2018.04.18 131
106 2018.02.21 "에베소서 2:1~7" 김수경 2018.02.21 235
105 2018.01.02 "마가복음 1:1~11" 김수경 2018.01.03 198
104 2017.12.19 "이사야 7:10~17" 김수경 2017.12.19 134
103 2017.12.06 "스가랴 5:1~11" 김수경 2017.12.07 154
102 2017.11.16 "에베소서 6:10~20" 김수경 2017.11.21 155
101 2017.09.20 "예레미야 3:19~4:4" 김수경 2017.09.21 144
100 2017.08.13 "창세기 3:1~10" 김수경 2017.08.16 137
99 2017.05.31 "열왕기상 11:14~25" 김수경 2017.06.17 180
98 2017.06.04 "마태복음 5:1~3" 김수경 2017.06.14 182
97 2017.04.09 "사사기 9:15~24" 김수경 2017.05.04 128
96 2017.04.02 "잠언 12:19" 김수경 2017.05.04 156
95 2017.04.06 "사무엘상 3:1~14" 김수경 2017.04.09 19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로그인

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