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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 믿음의 사람

 

다니엘기도회

히브리서 11:6

배준현목사님

 

 

식상한 상상일수도 있고 또 어린아이같은 상상일 수 있는데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세모나라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세모들이 살아가고 있고 건물도 세모고 먹는 음식도 세모이고 입는 옷도 세모인 이런 세모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 세모로 생겼는데 이 세모나라에 네모가 이사를 왔다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게 다 세모인데 네모가 이사를 오면 쉽게 받아주질 않았겠지요?

그러니 네모는 세모처럼 보이기 위해서 세모옷을 입고 세모음식도 먹으며 세모가 하는 것들을 다 하는데도 아마 그 삶 가운데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겠다' 하는 생각.

 

최근에 요르단에 다녀왔는데 요르단은 고대 성서 유적지가 많은 곳입니다.

사해에서 몸도 띄워봤습니다.

사해에 들어가니까 진짜 몸이 떴는데 신기했습니다.

두발과 두손이 물 밖에 나와있는데 둥둥 떴습니다.

허우적대면 오히려 뒤집어지고 가만히 있으면 붕 떠있는 그래서 사해에는 배가 뜰 수 없다고 합니다.

바다인데 엄청 큽니다.

단순히 호수가 아니라 끝에서 끝이 안보인정도로 엄청큰데 예쁘기도 엄청 예뻤습니다.

그런데 소금기가 많아서 배가 뜰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 유적지를 봤습니다.

중동국가이긴 했지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어서 주변에 이집트나 시리아 난민들이 많이 유입되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선교사님이 저희와 동행해 주시면서 요르단과 이스라엘을 둘러보도록 해 주셨는데 둘러보던 중에 본인의 선교 사역에 대해서도 여러가지를 저희가 묻기도하고 듣기도 하는 뜻깊은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요르단은 무슬림 문화권인데 모든 의복이나 음식, 건축등 모든것에 무슬림 문화가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선교사님은 그들의 언어를 말하고 굉장히 아랍어를 잘 하셨습니다.

유창하게 하시는데 그들의 언어를 말하고 그들과 비슷한 의복을 입으시고 그들의 문화속으로 들어갈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을 하고 계셨습니다.

사모님도 무슬림권에서 입는 옷을 입으시고 그들의 문화권으로 들어갈려는 노력입니다.

무슬림 친구들을 사귀고 그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그 사역이 굉장히 의미있는 사역이고 뜻깊은 사역이지만 쉬워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문화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신기한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똑같은 요르단 사람이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사람인데 무슬림권에 있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바로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누가 무언가를 말하지도 않고 뭘하지도 않았는데 느끼는 풍기는 이미지가 완전히 다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냥 딱 만나면 '이 사람이 무슬림이 아니라 기독교인이구나. 타종교 가진 사람이구나' 이것을 금방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너무 신기했습니다.

 

선교사님도 오랫동안 아랍권에 계시다보니 사람을 만나면 7~80%를 알아보신다 하였습니다.

아무말도 안하고 그냥 만나도 똑같은 사람인데도 풍기는 이미지와 표정과 모든게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이 살아가지만 완전히 세모나라에 네모사람과 똑같은 것입니다.

딱보면 알아보니까.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믿음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믿음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믿음이 필요한 세상.

'다 세모인데 눈에 보이는게 다 세모인데 네모가 진리야 라고 믿어야하는 이런 세상이 아니라 그냥 다 네모인 세상에 살면 좋겠다'

그럼 믿음이 필요없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똑같이 살면 편한데 눈에 보이는게 다 세모이고 다 세모처럼 보이는데 나혼자 네모가 옳은거야, 네모가 진리야'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런 삶이 어떨때는 피곤하다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히브리서 11장을 읽었는데 11장에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열거가 됩니다.

아벨이라는 사람은 믿음으로 남다른 예배를 드렸습니다.

남다른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때문에 형 가인에게 봉변을 당했습니다.

에녹도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굉장히 좋아보입니다.

 

그런데 다른면이 또 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얘기는 세상과 거의 등졌다는 얘기고 실제로 그가 하나님 앞에 휴거, 죽지않고 하늘로 올려짐을 통해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주변사람들과 헤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고나서 나오는 본문이 11장 6절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11:6)

 

그리고 나서 또 노아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100년 이상을 배를 지은 사람입니다.

아무도 배를 짓지 않는 산꼭대기에다가 큰 배를 100년이 넘도록 지은 사람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얼마나 조롱했으며 또 이상하게 생각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이 믿음 때문에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집을 떠났습니다.

당시에는 미친 짓이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죽을려고 작정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는데 그렇게 나그네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아들을 100세에 낳았지만 주님이 또 한말씀 하시니까 100세에 낳은 금쪽같은 그 아들을 죽여야만 하는 그런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사라도 믿음으로 아이를 낳기 위해서 숱한 세월을 눈물을 흘리며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11장 13절에도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히브리서11:13)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는데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도 아들을 낳긴했지만 그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다 보진 못했습니다.

'땅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수 많은 자손들을 너희에게 주리라' 는 그 약을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아가면 주님이 믿음때문에 주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놀라운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받지 못하는 것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이런 여러가지 힘든 상황, 그냥 단순히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붙들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세상을 살아가면 좋지만 네모가 가득한 세상, 기도응답이 가득한 세상에 살아가면 좋지만 사실은 실제적으로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모가 가득한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야만 하고 그 세모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나그네처럼 외국인처럼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가운데서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다 보고 느끼고 우리가 다 아는 것은 불신자들은 모릅니다.

그들은 못 봅니다.

우리는 다 네모가 진짜라고 생각하고 네모가 진짜 보이는데 그들은 세모밖에 안 보입니다.

네모가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그 틈바구니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믿음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2019 개척하라" 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개척이 뭔가요?

개척이라는 것은 숫자를 늘리고 영역을 늘리자는 뜻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 가서 그들의 땅에 가서 그들의 땅을 밟아서 그 땅을 주님의 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밟는 그 땅이 너희땅이 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그 땅을 밟아서 그 땅을 예수의 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여호수아1:3)

 

너희들이 하나님의 문화권, 예수 그리스도의 문화권 속으로 그들을 끌어들이고 그 땅을 변화시키는 일들에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이사야60:22)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뜻, 주님의 영역, 주님의 복음이 인정되고 진리로 여겨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작은자지만 우리를 위하여 천명을 움직이기를 원하시고 우리가 비록 약한자지만 오히려 강한 나라를 이루시게 하시기 위한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개척입니다.

 

우리가 가는 그곳이 안믿는 사람이 가득한 곳이고 세모가 가득한 곳이고 네모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그 땅에 들어가서 네모가 진짜며 네모가 사실이고 네모가 진리며 유일한 구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

 

사람들은 지옥을 향해 돌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옥으로 가는 길인지도 모르고 돌진하고 있습니다.

막 달리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그들을 멈춰 세우고 '지금 가는 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니까 천국으로 가자' 이렇게 이야기하는 삶을 믿음의 삶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멸망으로 가는 길은 넓다고 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넓은 길로 막 달려갑니다.

그런데 '넓은 길로 가지말고 좁은 길로 가자' 사람들을 그리로 이끌어가는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믿음의 길이고 이것이 바로 개척입니다.

 

개척이 어려운 이유가 뭘까요?

계속 말씀드리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언어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거와 같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딱 알아봅니다.

우리의 작은 말투나 행동을 통해서 딱 알아봅니다.

'교회다니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오랫동안 축적되어왔던 기독교에 대한 교회에 대한 여러가지 편견들로 꽉 쌓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전하고 쉽게 이야기 할려고 해도 받아들일려고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것, 마치 타국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에는 분명히 기적이 있어요.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붙들고 기도하며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히브리서11:32)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수 많은 기적이 그들 가운데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히브리서11:33~34)

 

이런 놀라운 기적들이 믿음의 삶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믿음의 순간들이, 믿음의 기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6절에 읽은 것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하나님 계신 것과 그가 그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을때 하나님은 그들 앞에 나타나시고 그 믿음의 사람들 앞에 놀라운 기적들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 이후에 내용이 확 바뀝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브리서11:35~38)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우리의 삶 속에 정말 간증할만한 놀라운 기도의 응답들을 체험하지만 동시에 어떤 이들은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산다고 노력했지만 결국에 사람들이 봤을때는 '기도응답도 없고 기적도 없고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었으나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

끝까지 인내했으나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것은 믿는 우리로써 믿음의 동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설교한다는 것이 설교자로서 믿음의 동기를 불러 일으켜야 되는 그런 상황 속에서 참 난감한 일입니다.

 

그리고 38절 이후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히브리서11:39)

 

'증거를 받았지만 직접 보지 못하였다'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11:40)

 

'온전함을 이루지 못한것' 은 다시말해 약속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 좋은 것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 삶의 끝에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 무언가 나는 기도응답을 받지 못했어' 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것말고 더 좋은 것을 더 온전한 것을 더 기적적인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 11장 6절의 말씀이 진리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아도 믿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어야하고 또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상주신다는 사실을 끝까지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눈앞에 그것이 없어도, 지금 내 눈앞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로 믿음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얼마전 설 명절때 제가 요르단에 있었습니다.

설이라고 인사를 해 주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친구는 최근에 큰 병을 앓아서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 친구와 얼마전 통화를 하는데 그 친구는 아주 젊은 친구인데 최근에 암수술을 받고 지금은 계속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암이 생긴 다음 또 재발할 수 있으니까 계속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기도가 안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도를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뜻하지 않게 자기가 열심히 안 산 것도 아니고 굉장히 교회에서도 어디에서도 열심히 살았던 친구인데 뜻하지 않게 병을 얻어서 굉장히 고생을 했습니다.

암이 발견되었을때가 2기와 3기 사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위도 어려운 부위여서 상당히 고생을 했고 그런지 지금은 일단은 수술하고 항암치료까지 다 마치고 계속 3개월마다 확인하고 주사맞고 이런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유해 주시고 했는데 왜 기도가 안되냐니까 이 친구말이 이겁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또 재발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기도해도 주님은 마치 내 기도와 상관없이 주님의 뜻대로 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냥 본인 뜻대로 하실 것이기 때문에 내가 기도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자기가 다 마치 완치된 것처럼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언제 또 이와 비슷한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음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그 불안 속에서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제 걱정도 안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굉장히 자기 스스로 시니컬해지고 상당히 염세적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기도하지 말고 몇개 말씀을 보내줄테니 기도시간에 말씀을 읽고 읽고 또 읽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명백하게 말씀해주신 약속, 어떻게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해 주겠다는 말씀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뜻을 행하는 자에게 천대까지 복을 베푸신다는 말씀.

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함께하신다는 말씀.

시편 40편에 웅덩이와 수렁이에 있을지라도 끌어내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런 말씀들을 몇개 보내주면서 그 약속을 붙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12장 1~2절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12:1~2)

 

마이클 웰즈라는 사람이 쓴 <하늘의 제자도> 라는 책을 기반으로 이어가고 있는데 그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분이 어느 집회 장소에 가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무언가 주실 것이라고, 기도응답을 하실 것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는 사람은 손을 한 번 들어보라고 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믿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분이 있으시면 계속 손을 들고 계십시요. 기도가 이루어 지리라 믿었었는데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손을 들어봐 주십시요' 라고 하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손을 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응답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계속 손을 들어 주십시요. 예를들어 자녀의 건강을 지켜달라고 기도했지만 자녀가 죽었거나, 아기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지금은 거의 불가능해 졌거나, 또는 집이나 교회나 일터나 가족 위해 특별한 기도제목이 있었는데 그것이 응답되기는 이미 늦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시면 계속 손을 들고 계십시요' 라고 얘기했더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기도제목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어도 그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분이 있으시면 계속 손을 들고 계십시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는 유일한 그룹에 한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모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세모나라에서 네모가 진리라고 이야기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지 못한다고.

 

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 같고 아무리 세상에 세모가 가득한 것 같아도 '하나님은 계시다' 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우리가 찾고 찾고 또 찾으며 그 분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에게, '주님을 찾는 우리에게 상을 주신다' 는 사실을 믿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그 분 앞에 여러분의 삶을 드리고 여러분의 믿음을 드릴때 주님을 찾고 또 찾을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속에 기적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하는 눈에 보이는 기적이 꼭 아니다 하더라도 더 좋은 것으로 준비하셔서 우리에게 반드시 베푸신다는 사실을 믿고 또 믿고 또 믿으시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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