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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사건과 부활 신앙 (1)

                                                                                         대구동신교회  권 성 수 목사
        
예수님은 위대한 스승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의 위대한 교훈을 따라 산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실천가이시다. 그러나 그분의 실천을 본받아 산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와 삶이 중요하긴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빼 놓고서는 그것이 구원을 주지 못한다. 인간을 구원하는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다.

복음의 핵심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너무 많이 들어온 것이어서 사람들은 새로운 어떤 것, 현대인의 구미에 맞는 어떤 것, 십자가와 부활을 뺀 감미로운 사랑과 겸손의 새로운 복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쉽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고리타분하여 신선미가 없고 현대인으로 하여금 복음의 불감증에 걸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쉽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의 죽음과 함께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성경은 고전 15:1-3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복음의 핵심을 지적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와 함께 이와같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에 만일 부활이 역사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면 우리가 믿는 복음 자체가 거짓말이 되고 말 것이다. 또한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적으로 부활하셨다고 할지라도 오늘의 내가 그의 부활과 실존적으로 관계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이 나에 관한한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두 시간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부활하신, 부활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우리의 삶과 실제로 관련시키는 부활 신앙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I.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자들

안식후 첫날 큰 지진이 일어나고 번개같은 천사가 흰 옷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와서 무덤에서 돌을 굴려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와 무덤을 지키던 보초들이 그것을 보고 무서워 떨며 죽은 사람들처럼 되었다. 그 때에 그 보초들은 그 천사가 어떤 여자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마 28:2-6). 그 보초들 중에 일부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대제사장들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을 때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함께 의논하고 그 보초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고 지시했다. 그 보초들은 거액의 뇌물을 챙기고 지시받은 대로 거짓말을 했고 그 거짓말이 당시에 유대인들 가운데 두루퍼졌다 (마 28:11-15).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으로 부활하지 않았다는 거짓말은 그 당시에만 유포된 말이 아니고 현대에도 학자들을 통해서 유포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을 부인하는 학설들이 여러가지 형태로 나와 있다.
        
1.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당시에 이미 퍼져있던 학설로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질한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고 거짓말했다는 학설이 있다. 독일의 라이마루스(H. M. Reimarus)는 1778년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목표>(The Goal of Jesus and His Disciples)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의 생활을 포기하기 싫어서 그의 시체를 도적질하여 숨겨 놓은 후에 시체가 발견되어도 이미 썩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되도록 하기 위해서 50일을 기다렸다가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질 했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무덤은 약 2톤 짜리 돌로 막혀 있었다. 예수님은 무덤은 또한 당시에 가장 잘 훈련된 로마 보초 부대가 지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무덤은 로마의 공식적인 인장으로 봉함되었다. 보초병이 시체와 무덤과 돌을 점검한 후 돌을 가로지르는 끈을 치고 끈 양쪽 편에 진흙으로 봉인했다. 그 진흙 위에 로마 총독의 공식적인 인장을 쳤다. 도적들이나 강도들이 그것을 건드리면 로마 제국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행 7:60; 12:2). 이런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거짓이다.
        
2. 휴 숀필드(Hugh Schonfield)는 1965년 <유월절의 음모>(The Passover Plot)라는 책에서 기절설을 주장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로서 실패하자 선지자로서 성공하기 위해서 구약에 따라 자기 백성을 위해 속죄의 고난을 당하기로 결심한 후 아리마대 요셉과 짜고 "내가 목마르다"는 사인을 하면 요셉이 예수를 바로 실신 상태로 몰아갈 강력한 약품을 스폰지에 넣어 전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요셉이 빌라도에게 달려가 요청하여 시체를 무덤에 넣어 두었는데, 그 후 예수는 실신 상태에서 깨어나 제자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숀필드의 이런 주장은 복음서의 기록에 정면으로 충돌하고 고도의 상상력을 동원한 허구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가장 잔인하고 무시무시하고 효과적인 처형 방법인 십자형으로 처형되었다.  예수님의 시체는 견고한 돌 무덤에 매장되었다. 예수님의 시신은 정확한 유대인의 장례 관습대로 100파운드 이상의 향료로 처리되었다. 이 모든 사실은 예수님의 죽음이 확인된 것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양손과 양발과 머리의 상처를 통해서 피와 물을 쏟았지만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 남은 피와 물을 다 쏟으셨다. 군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곁에 함께 달린 다른 두 죄수의 다리는 꺽었지만 예수님은 이미 죽은 것을 확인하고 다리를 꺽지 않았다 (요 19:33). 그가 죽은 것이 철저하게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죽지 않고 기절했다는 것은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라이마루스의 도적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사기꾼으로 만드는 학설이라면 숀필드의 기절설은 예수님을 경건한 사기꾼으로 만드는 학설이다. 그러나 사기꾼의 말을 듣고 그가 부활했다고 생명을 걸고 증언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3. 하바드의 키로솝 레이크(Kirsopp Lake)는 1912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이 묻힌 곳에는 여러 개의 무덤이 있었는데 여자들이 주일 아침 일찍 예수님이 묻힌 무덤이 아니라 비어 있는 다른 무덤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그 무덤 앞에 있던 어떤 청년이 그들에게 "그가 여기에 있지 않다"고 했고 예수님이 묻힌 다른 무덤을 가리키면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때 여인들은 겁이 나서 무슨 소리인지도 모른 채 그냥 도망을 쳤다는 것이다. 후에 그 여인들은 그 청년이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했다고 착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레이크의 이런 주장 역시 복음서의 기록과 전혀 맞지 않는 것으로서 상상해서 만든 것에 불과하다. 여인들은 예수님을 장례지낸 후 예수님의 무덤을 확인했고 (마 27:61) 안식후 첫날 예수님의 바로 그 무덤으로 갔다. 그들이 여러 무덤 중에서 예수님의 무덤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기록은 성경이나 다른 어떤 문헌에도 없는 것이다.
        
4.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은 <케리그마와 신화>(Kerygma and Myth)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주관적인 비전으로 본 것인데 그 비전이 너무도 생생하여 실제 부활한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주관적인 비전이라는 것은 개인이 각기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주관적인 비전을 때로는 2명이, 때로는 11명이, 때로는 수십명이, 때로는 500여명이 동시에 볼 수 있는가? 제자들이 주관적인 비전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다.
        
5. 모톤 엔슬린(Morton Enslin)은 1961년 <나사렛의 선지자>(The Prophet from Nazareth)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죽은 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행하신 기적들을 회고하면서 예수님은 결코 죽음으로 끝날 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서 그가 부활했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끼친 인격적인 영향이 부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 역시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기록에 어긋나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다 도망갔던 자들이다. 특별히 베드로는 여자 아이 앞에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두려워 도망갔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참으로 부활하신 부활사건이 없었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생명을 걸고 증거하는 부활신앙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제자들이 "와, 우리 선생님은 훌륭한 분이셨지"하고, 예수님의 인격적인 감화를 회상하면서 그의 부활을 증언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예수님은 죽으시기 전에 자신이 부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만일 그가 훌륭한 스승이라면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셔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인격적인 감화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에 대한 실망이 더 깊이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6. 마이컬 페리(Michael Perry)는 1955년 <부활절 수수께끼>(The Easter Enigma)라는 책에서 예수님이 텔레파시(telepathy)로 제자들과 의사소통을 하여 제자들이 알고 있던 대로의 예수님의 몸이 유령으로 제자들의 마음에 나타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초심리학(parapsychology)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역사적인 부활을 부인하는 것인데, 초심리학은 과학적 학문으로 정립된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서와 바울서신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마음에 나타났다고 증거한 것이 아니라 직접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셨다고 증거하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위에서 시체 도적설, 기절설, 무덤 오인설, 주관적 비전설, 인격 감화설, 텔레파시설 등을 소개하고 비판하였는데,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적으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 신자들의 믿음도 공허하고 전도도 공허한 것이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은 것을 믿고 또 그것을 전하는 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셨는데, 만일 역사적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에 매여 죄의 값으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죽은 신자들도 앞으로 부활하지 못할 것이고 우리도 죽으면 부활하지 못할 것이며 소위 완성된 미래의 천국이란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완성된 천국에서 부활하여 영원히 살 것이라는 우리의 희망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고 그런 희망을 바라보고 희생하고 고생하면서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고전 15:14-19).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역사적으로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온 세상을 구원과 심판으로 다스리시며 앞으로 재림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 때 완성된 천국에서 우리가 사랑하고 사모하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복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의 믿음도 전도도 희망도 공허한 것이 아니며 우리는 우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때문에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받고 오늘을 살고 있는 행복한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적으로 부활하셨다는 증거가 있는가?
        

        
                             II.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성경적 증거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셔서 그 죽음이 확인된 상태에서 역사적으로 육체적으로 부활하셨다는 증거는 성경에 확실하게 제시되어 있다. 복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풍부한 증거가 있다 (마 28:1-20; 막 16:1-8; 눅 24:1-53; 요 20:1-21:5).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는 내용과 살아계셔서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속적인 기도와 신뢰를 기록하고 있다. 서신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요 살아계신 주님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계시록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것과 그분이 대적들을 쳐부수고 영광 중에 다스리시기 위해서 재림하실 것을 거듭 증거한다. 다라서 신약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다. 성경 눅 24:5-6에 보면 안식 후 첫날 무덤에 간 여인들에게 천사들이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했다. 마 28:6에서도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고 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시기 전에 이미 부활하실 것을 아셨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말씀하셨으며 (마 16:21; 17:22; 20:19)  그렇게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대로 성취된 사건이다. 그것이 우연한 사건이라면 그만큼 확실성이 없겠지만 그것은 사전에 의도된 사건이기 때문에 그만큼 확실한 사건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기적 예언에 따라 이루어진 사건일 뿐 아니라, 구약의 장기적 예언에 따라 이루어진 사건이다. 시 16:10에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는 다윗의 싯귀가 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이 싯귀를 두고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하게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29-33). 예수님의 부활은 다윗이 그로부터 약 1천년 전에 이미 예언한 대로 이루어진 사건이며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살아계신다는 증거가 오순절에 그가 보내신 성령이라는 것이다.
        
3.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은 위와 같이 그것이 예수님 자신의 예언과 구약의 예언에 따라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확인될 뿐 아니라,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의 무덤 주변의 정황에서도 확인된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등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을 때 큰 지진이 일어났다. 흰 옷 입은 번개 같은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약 2톤 짜리 돌을 굴려 내었다. 그것을 보고 여인들은 무서워했고 보초들은 무서워 떨며 죽은 사람들처럼 되었다. 천사는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고 증언하였다. 여인들은 예수님이 누우셨던 빈 무덤을 보았다. 베드로와 또 한 제자는 예수님의 무덤 속에서 예수님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몸을 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따로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요 20:3-8). 보초들은 그런 사건 후에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보고했고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보초들에게 뇌물을 주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거짓말을 하게 하였다 (마 28:1-15). 이 모든 사건의 정황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입증한다.
        
4. 위에서 말한 사건의 정황보다 더 정확한 증거는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무덤가에서 울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다 (요 20:14-16).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고 그분이 성경을 풀어주시는 것을 들었다 (눅 24:13-31).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을 피해서 도망간 열한 사도와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 그들은 또한 그분이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고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시는 것을 보았다 (눅 24:36-43). 그 때에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라는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으나 후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는 도마에게 나타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실 때에 부활하신 주님을 확실히 목격했다 (요 20:27). 부활하신 예수님은 500여명의 신자들에게 일시에 나타나 보이셨는데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부활을 증거할 당시에 그들 대다수는 생존해 있었다 (고전 15:6). 부활하신 예수님이 500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신 것이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기 불과 20년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기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 형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믿지 않던 야고보에게도 나타나셨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투옥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던 바울에게도 나타나셨다 (고전 15:7-8).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렇게 날자와 시간을 달리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나셨고, 어떤 때는 개인에게 어떤 때는 집단에게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자들 중에는 새벽 미명에 목격한 자들도 있고 대낮에 목격한 자들도 있고 해질 때에 목격한 자들도 있으며 밤에 목격한 자들도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자들 중에는 동산에서 목격한 자들도 있고 길에서 목격한 자들도 있고 산에서 목격한 자들도 있고 바닷가에서 목격한 자들도 있고 집에서 목격한 자들도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자들 중에는 여자들도 있고 남자들도 있고 사도들도 있고 평신도들도 있으며 그분을 따르던 자들도 있고 그분을 박해하던 자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날자와 시간에 다양한 장소에서, 때로는 개인적으로 때로는 집단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던 것이다. 부활은 이 정도의 목격 사건이다. 목격자의 증언 치고 이렇게 확실한 증거가 있겠는가.
    
5.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자들이 생명을 걸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다. 예수님이 죽을 때에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건강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다 (행 4:10). 대제사장들과 그 문중과 관원들과 장로들이 위협을 함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큰 권능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다 (행 4:33).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투옥시키려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다음 생명을 걸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다. 예수님이 죽을 때에 두려워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되 모두가 한결같이 생명을 걸고 증거한 것을 보면 예수님이 확실히 부활하신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그들의 증거는 뇌물로도, 돈이나 명예로도, 심지어 죽음의 위협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III.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현대인들의 증언

현대의 유명한 학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다.  
        
1. 옥스포드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 토마스 아놀드는 그의  3부작 <로마의 역사>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다른 시대들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시대들에 대해서 쓴 역사가들의 증거를 조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사인, 즉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다는 사건보다 공평한 연구자에게 더 좋고 더 완전한 증거에 의해 입증된 사건은 인류 역사에 하나도 없다."

웨스턴 미시간 대학교에서 고대 역사를 가르치는 폴 마이어(Paul L. Maier) 박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모든 증거를 조심스럽고도 공정하게 살펴본다면 역사연구의 정론적 지침에 따라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 참으로 정당하다. 즉 예수가 묻혔던 무덤은 부활절 아침에 실제로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뒤집어 엎을만한 어떤 문헌상의 증거도 비문이나 고고학에서 발견된 바가 아직 전혀 없었다."
        
2. 영국의 대법원장 칼데코트경도 이렇게 말했다. "나의 신앙은 성경에 계시된 것에서 시작되었고 거기에 근거한 것이다. 특별히 신약성경의 복음서와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들이었던 자들의 글들은 거기 진술된 사실에 대하여 치밀한 증거를 가진 압도적인 케이스로 보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장을 최고로 입증해 주는 사건은 그의 부활인데, 내가 그의 부활의 증거를 조사해 본 결과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건이다."

   하바드 대학교의 유명한 법학 교수 사이몬 그린리프(Simon Greenleaf) 박사는 증거를 다루는 천재로서 하바드 대학교 법학과를 미국의 명문으로 끌어 올린 석학이다. 그는 3권으로 된 <증거의 법에 대한 논문>(A Treatise on the Law of Evidence)이란 명저에서 제시한 증거의 법칙, 즉 법원에서 사용하는 증거의 법칙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자료들에 적용한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상 어떤 사건보다 더 확실한 증거로 증명되는 사건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이 사실을 <법원에서 시행되는 증거 법칙에 따른, 사복음서 저자들의 증거에 대한 조사>(An Examination of the Testimony of the Four Evangelists by the Rules of Evidence Administered in tile Courts of justice)라는 책에서 밝혔다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법률가로 알려진 존 싱글톤 코플리경(John Singleton Copley)은 대영제국의 법무장관울 역임했고 영국의 대법관을 3번이나 역임한 사람이다. 코플리경이 죽은 다음 그의 개인적인 기록 가운데 법률적 증거에 비추어 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평이 발견되었다. "나는 증거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와 같은 것은 아직 깨어진 바가 없는 것이다." 그는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합리적인 변호사 프랭크 모리슨(Frank Morrison) 박사는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고상한 생애에 먹칠한 사건, 즉 동화같은 해피 앤딩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부활의 신화를 폭로하는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그는 사실들을 다 연구한 후에 증거의 무게에 눌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애초에 부활의 신화성을 폭로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로 계획했다가 그 계획과는 정반대로 부활의 역사성을 증명하는 책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계획하지 않았던 책을 쓴 후에 <누가 돌을 옮겨 놓았나?>(Who Moved the Stone? )라는 제목을 붙이고 첫장은 "쓰기 싫어했던 책"이라는 의미심장한 타이틀을 붙였다.
        
3. 문학적인 천재이며 캠브리지의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교수 씨 에스 루이스는 기독교는 틀렸다고 생각했었다. 자기가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루이스는 1929년 골수 무신론자/골수 냉소주의자들/가장 까다로운 친구 교수들이 혐오하는 복음서의 역사성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캠브리지 막달렌 빌딩의 한 방에서 밤이면 밤마다 연구하던 일을 잠시 멈출 때마다 내가 그토록 만나기 싫어했던 그분이 꾸준히 집요하게 나를 찾아 왔을 때 내 느낌이 어떠했겠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라.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것이 드디어 내게 일어난 것이다. 1929년 나는 항복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고 엎드려 기도했다. 아마 그날 밤 나는 영국 전체에서 가장 기가 죽고 가장 내끼지 않는 회심자였을 것이다."

    사본비평가 웨스트코트(Brooke Foss Wescott)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증거를 다 종합해 볼 때 그리스도의 부활보다 더 잘, 더 다양하게 입증된 역사적인 사건은 없다. 부활이 거짓말임에 틀림없다는 가설은 입증할 만한 증거가 전혀 없다."

4. 조쉬 맥도웰(Josh McDowell)은 대학생들을 지도하는 사람으로서 행복과 자유의 참된 원천을 찾으려고 좌절스러운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학생들과 교수들이 소그룹으로 모여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증언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회의주의자인 맥도웰에게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고 죽은 자들 중에서 부활하셨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지적으로 조사해 보라고 도전했다. 이러한 도전을 받은 맥도웰은 1,000 시간을 투자해서 철저하게 연구한 끝에 <부활: 역사적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지원하는가?>

(The Resurrection Factor: Does the historical evidence support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라는 1992년판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놀랍게도 나는 기독교를 논박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역사 속의 하나의 사건을 부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다. 그래서 나는 신자가 되었다."

최고의 역사가, 최고의 법조인, 최고의 문인, 사본 비평가, 철저하게 의심했던 대학생 지도자 등이 정직하게 인정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확실한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다. 성경대로 부활하시고 많은 목격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그분이 살아계시다는 것은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사건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두고 시체 도적설이니 기절설이니 무덤 오인설이니 개인적 비전설이니 인격 감화설이니 텔레파시설이니 해서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살펴 보았다. 동시에 그런 주장들이 근거없는 낭설들이라는 것도 지적했다.

성경대로 살펴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에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사건이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수백년 전에 이미 구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사건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또한 빈 무덤, 큰 지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천사들의 증언, 시신 없는 세마포와 머리 수건,  무서워 떨며 죽은 자들처럼 된 보초들 등의 정황으로도 입증되는 사건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사람들이 시간과 장소를 달리해서 때로는 개인적으로, 때로는 집단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으며 생명을 걸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증거했다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렇게 성경이 증언하는 역사적 사건일 뿐 아니라 현대의 유명한 역사가들이 역사적 모든 증거를 다 살펴본 후에 역사상 어떤 사건보다 더 확실히 발생한 것으로 인정한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또한 유명한 법률가들이 법적인 증거의 법칙에 따라 모든 증거를 다 조사한 후에 법률상의 어떤 케이스보다 더 확실한 케이스로 인정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유명한 문인과 사본 비평가와 철저하게 의심하던 대학생 지도자가 항복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확실한 증거를 가진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렇게 성경적으로 보나 현대 학자들이 사용하는 증거의 법칙으로 보나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역사적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부활하셨고 지금 살아 계신다.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하늘이 없다는 것과 같은 속임수이고 겨란으로 바위를 치고 바위가 깨어졌다고 하는 것과 같은 거짓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확실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부활 사건과 부활 신앙 (2)
        
I.  부활 사건을 무시한 부활 신앙은 공허한 신앙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경적으로 보나 학문적으로 보나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역사적인 증거의 법칙이나 법률상의 증거의 법칙이나 문헌상의 증거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상 어떤 사건보다 더 잘 입증된, 가장 확실한 사건이라는 것을 살펴 보았다. 부활 사건은 이렇게 확실한 것이지만 내가 그것을 믿지 않으면 그것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역사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부활의 역사적 사건성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나와 관계해서 실제적인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내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나셨다"고 받아들이고 도마처럼 "당신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입니다"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부활신앙이다.

부활신앙을 말할 때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해마다 부활절이 오면 부활절 메시지를 전하는 자들 중에 부활의 역사적 사건은 중요하지 않고 오늘 우리가 부활신앙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자들을 발견한다. 이런 메시지의 뿌리는 부활사건을 무시한 부활신앙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건적인 역사(Historie)는 중요하지 않고 실존적인 역사(Geschichte)가 중요하다는 사상이 그런 메시지의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1. 루돌프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The Historical Jesus and the Kerygmatic Christ)라는 책에서 시체가 일어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면서 복음을 선포할 때 예수가 부활한다고 주장했다 (p. 42).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부활했기 때문에 그의 무덤은 빈 무덤이라는 식의 얘기는 불트만이 볼 때 부활에 무관한 것이라는 것이다. 불트만은 복음이 선포될 때 예수님이 그 선포되는 내용 속에 살아 계셔서 청중과 실제로 만난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한 것이다. 불트만의 부활관은 부활의 역사적 사건을 무시한채 부활의 실존적 의미, 즉 부활신앙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2. 안병무 교수는 <성서적 실존>이라는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를 설명할 때 자신이 본 환상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pp. 316-17). 예수의 "시체는 군중들에게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시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시체는 한낱 죽은 살덩어리가 아니라 그 왕의 학정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였다....아니, 그것은 인간의 모든 죄와 고뇌, 슬픔과 불안과 절망의 시체였다. 이 때 그들에게는 계시와도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그것은 저 시체가 바로 내 것이 아닌가, 잃었던 <나>가 아닌가고 생각됐던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신은 바로 우리의 패배와 고난, 능욕과 저주를 제 몸에 걸머진 이 젊은이가 아닌가! 마침내 이 무리들은 초라한 수난자를 우리의 신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안병무 교수는 예수님의 죽은 시체를 보면서 그 속에서 "잃었던 <나>"를 발견하고 "우리의 패배와 고난, 능욕과 저주를 제 몸에 걸머진 이 젊은이" 예수가 자신들의 신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라고 했다. 안병무 교수는 "예수가 불법자의 손에 죽음으로써 바로 그들의 손에 죽어간 수많은 죽음을 대신했고 또한 그 죽음과 싸워서 이겼다는 사실이다.

예수의 부활은 불법자에들에게 당한 억울함, 패배, 수치, 모욕, 고통에 짓눌려 죽어간 저들을 살려 일으킨 첫 열매인 것이다"고 주장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최후의 무기로써 휘둘러 온 권력자들의 위협과 그 죽음의 공포에서 인간을 해방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안병무 교수가 말한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으로 육체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부활한 사건이 아니라, 한많은 민중이 권력자들의 죽음의 위협에서 해방받아 죽음과 대결하여 그 위협 아래에서도 살아 있다는 부활 신앙이다.
        
3. 불트만과 안병무 교수는 둘 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복음의 선포를 통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믿는 실존적 신앙이나 권력자들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죽음으로써 죽음의 공포에서 민중을 해방시킨 실존적 부활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부활의 역사성이 부인되거나 약화되거나 무시되는 상황에서의 실존적 부활신앙이라는 것은 무의미하고 공허한 신앙이다.

앞서 지적한 바 있지만 성경 고전 15:14-19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 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금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역사적으로 육체적으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공허하고 우리의 믿음도 공허하며 우리의 희망도 공허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들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면 복음 선포에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불트만의 주장도 무의미하고 권력을 대항한 한 젊은이의 희생적 죽음 속에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다는 민중의 해방도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부활의 역사성에 뿌리 박지 않은 부활의 실존적 의미는 기독교 복음의 공동화(空洞化)를 가져온다는 것을 증거한다. 부활의 역사성이 없는 부활 신앙을 주장하는 것은 뿌리가 없거나 잘린 나무 위에 신자들을 올려 놓는 것과 같다. 부활 사건이 없는 부활 신앙은 인생 광야의 모진 바람이 불면 여지 없이 무너진다.
        
4.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말할 때는 필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부터 육체적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진리를 전제해야 한다. 부활 신앙은 부활 사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지적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부활하셨다

는 것은 신구약 성경의 확고한 증언일 뿐 아니라 유명한 역사가들과 법률가들과 문헌학자들의 증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상 가장 잘 입증된 사건이고 법률상 가장 확실한 사건이며 문헌상 가장 잘 밝혀진 사건이다.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고 뒤집을래야 뒤집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신 사건은 하나님의 절대적 신실성과 확실성의 보장을 받는 절대 확실한 사건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주의 총사령관이신 하나님의 인감도장을 받은 우주적 확실성을 지닌 사건이다. 이제 이렇게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근거하여 부활의 신앙을 거론해야 한다.

유명한 신약신학자 조지 래드(George E. Ladd)는 그의 <신약신학>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p. 320).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창출하기 위해서 무엇인가 발생했다. 여기에 핵심적인 이슈가 있다. 제자들의 신앙이 부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들 배후의 사건이 그들의 신앙을 창출한 것이다. 그들은 신앙을 잃었었다. 그들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었다 (눅 24:25). 부활의 사실과 부활에 대한 신앙은 불가분리적이지만 동일한 것이 아니다. 사건이 신앙을 창출한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근거한 부활 신앙은 어떤 것인가?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존적 의미는 무엇인가?
        
        
        II.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현재생활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부활하신 사건은 최고로 확실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 사건의 역사성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살아 나셨다"는 것을 믿을 때에 믿는 자들의 현재 생활에 변화가 일어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장차 신자들의 부활을 보장하는 첫 열매인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를 미래의 부활에서만 찾는 것은 한 쪽 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능력이다.
        
1. 슬픔과 불신에서 기쁨과 경배로 변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은 사건이 그를 따르던 제자들을 슬픔과 절망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 그들의 슬픔과 절망은 기쁨과 희망으로 바꼈다.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던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큰 기쁨"을 맛보았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그 발을 붙잡고 경배"했다 (마 28:8-9). 열한 제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너무 기뻐"했다 (눅 24:41; 요 20:20).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경배했으며 (마 28:16)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것을 보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했다

(눅 24:52-53).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감격의 신앙고백을 했다 (요 20:28).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삶을 살았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은 명백한 사건이므로 이것을 믿으면 믿는 자의 생활이 슬픔에서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로 바뀐다. 부활 사건을 계속 믿으면 폭풍노도가 끊임없이 이는 이 세상에서 기쁨과 경배의 삶을 살게 된다.

     스펄젼 목사님이 존 켐벨 박사님의 집에서 어느날 이런 얘기를 들었다. 어떤 목사님이 무어필즈에 있는 윗필드의 옛 성전에서 설교하는데, 그날 저녁 아주 방탕하게 살아가는 두 젊은이가 아주 무서운 죄를 짓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만일 그 죄를 지었다면 일생토록 그 결과에서 벗어나지 못할 죄를 짓기로 한 것이다.

그들이 무어필즈 성전을 지나고 있을 때 그 불경한 작업을 하기 위해 시간을 맞추려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 봐. 저 안에는 분명히 시계가 있을 거야"라고 했다. 그러나 시계는 설교자의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 반대편에 있었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시계를 보기 위해서 낭하 상당히 깊이 들어가 뒤를 돌아보아야 했다. 그 때 설교자가 이상한 소리로 설교를 해서  젊은이의 주목을 끌었고 그 젊은이를 낭하에 그대로 붙잡아 매 두었다.

기다리던 젊은이는 다른 젊은이가 왜 안나오나 싶어서 자기가 들어가서 직접 시계를 보고 친구를 끌고 나와야 겠다고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주님의 화살이 두 젊은이의 가슴을 찔렀다. 두번째 젊은이는 존 윌리암스로서 후에 에로망가에서 순교한 유명한 선교사이다. 무서운 죄를 짓기로 한 젊은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에 부딪히게 될 때에 새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다.

조쉬 맥도웰은 앞에서 소개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1,000 시간을 연구한 다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도 마음은 계속 다른 방향으로 자신을 끌어갔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아를 깨뜨리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맥도웰은 자기 인생의 파티를 망치는 자가 자기 인생 속으로 침공해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으나 새벽 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예수를 자기 마음에서 떨어 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다. 그는 모든 다른 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마음이 열려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일에 있어서는 콱 닫혀 있었다. 뇌가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이 고민이 심했다. 마침내 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항복을 했다. 그 후에 그는 마음의 평안을 느꼈고 혈기를 통제할 수 있었고 자기가 증오하던 자기 아버지에게 "아빠, 아빠를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은 맥도웰의 삶이 변화된 것이다.
        
2.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새생명: 바울은 롬 6:4에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신비스럽게 연합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죽으실 때에 같이 죽고 장례되실 때에 같이 장례되고 부활하실 때에 같이 부활하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지금 신자들도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신자들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들이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들인데, 신자들은 이런 신분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사람은 자기를 노예로 부리던 주인으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에 옛 주인이 무엇을 하도록 아무리 명령을 해도 순종할 의무가 없다. 신자들은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의의 종들이 되었기 때문에 죄가 자기에게 순종하도록 명령할 때에 거기에 순종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이 그 속에서 약동하게 되는 것이다.
        
3. 죄인을 의롭다 하시기 위한 사건: 바울 사도는 롬 4:25에서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증언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죄와 죽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기 때문에 죄인들인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공로에 근거하여 우리를 "의롭다"고 법정적인 선언을 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사단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역으로 영역이전을 하게 되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4. 날마다 죽을 수 있게 하는 생명의 원동력: 바울은 고전 15:31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이 자신 속에서 약동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날마다 위험을 무릅쓰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신자들 속에 역사하고 있다. 바울은 엡 1:19에서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지적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를 위하여 날마다 죽는 삶을 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이 더욱 강하게 우리 속에 역사하신다는 점이다.

바울은 고후 4:11에서 "우리 산 자가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은 신자들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날마나 주님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fact)일 뿐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에 근거한 능력(force)이다. 그것은 역사와 문명의 코스를 바꾼 사건과 능력인 것이다. 우리는 부활능력을 받아 사는 자들이기 때문에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 등 땅에 있는 지체들을 죽이고 위엣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골 3:1-5).
        
5.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 건설: 성경은 엡 2:13-14에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이 둘을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만들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한 가족 된 자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들로서 총체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사회를 건설하는 사람들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구성한 것을 볼 수 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여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4-47).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은 개인을 구원하는 원동력일 뿐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안병무 교수는 <성서적 실존>이라는 책에서 3.1 운동과 4.19 의거는 "불법자와 불의한 자들의 손에 죽은듯 했던 민중들이 죽음과 대결하면서 그 위협 아래에서도 우리는 살아 있다는 것을 증거한 사건"으로서 "불법자의 손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의 구현"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p. 318). 3.1 운동과 4.19 의거가 정치적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독재에 맞서서 싸운 정의의 운동으로 높이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그런 운동을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의 구현으로 보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너무 얕게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의 사회적 의의는 정치운동을 통해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차원보다 훨씬 깊이 들어가서 예수의 부활생명이 죄인들인 인간들을 변화시킴으로써 그들 속에 예수의 정의와 평화의 생명이 약동하게 하여 그들을 통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데 있다.
        
        
        III.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미래생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슬픔과 좌절을 기쁨과 경배로 바꾸는 사건이며 죄인을 의롭다 하는 사건이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생명이 약동하게 하는 사건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날마다 죽음을 무릅쓰게 하는 원동력이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에너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처럼 성도의 현재생활에 생명과 능력을 제공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성도의 미래생활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원천이기도 하다.
        
1. 신자들의 부활의 첫 열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 일부가 신자들의 부활을 부인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사건을 제시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밝혀서 부활신앙의 토대를 든든하게 한 다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신비스러운 연합을 한 사람들의 부활을 보장하는 사건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첫 열매는 다음 열매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약속하고 보장하는 징표이다. 바울은 이 점을 설명할 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다 (고전 15:22). 이것은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들이 죽은 것 같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모든 신자들이 부활생명에 동참하게 된다는 언약의 원리이다.
        
2. 영광스러운 부활체: 앞으로 주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죽은 신자들은 육체적으로 부활하고 살아 있는 신자들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그 때 죽은 신자들은 현재와 같이 죄와 사망으로 시달리는 연약하고 천한 몸이 아니라 썩지 아니하고 강하고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살아 있는 신자들은 "마지막 나팔에 순식 간에 홀연히 다 변화할" 것이다 (고전 15:42-44,51).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은 나사로처럼 (요 11:1-44) 단순히 죽었다가 본래 상태로 살아나신 것이 아니다. 만일 그런 몸으로 부활하셨다면 연약과 노화와 죽음에 지배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연약과 노화와 죽음에 지배받지 않고 영원히 사는 몸으로 부활하셨다. 어떤 경우에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 보았지만 (마 28:9,17; 요 20:19-20, 26-28; 21:7,12), 예루살렘의 11명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처음에는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워했으나 (눅 24:33,37) 예수님의 손발과 구운 생선 드시는 것을 보고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 보았다.

이런 것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과거의 예수님의 몸과 달라 보였던 것 같다. 과거의 예수님은 고난과 역경과 슬픔을 당하셨던 모습이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완벽한 젊음과 완벽한 건강을 지닌, 죽지 않는 영광스러운 신령한 몸이었다 (고전 15:53). 부활하신 예수님이 육체를 가지고 계신 것을 분명했지만 (마 28:9; 요 20:15,20,27; 21:12-13) 그 몸은 갑자기 나타나셨다가 사라지실 수 있는 것이었다 (눅 24:31,36; 요 20:19,26).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영광스러운 부활체였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우리도 그와 같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거나 변화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발과 옆구리에 상처가 그대로 있었다는 사실(요 20:27)에 근거해서 우리도 완성된 천국에서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은 그의 <조직신학>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경우는 우리를 위한 고난과 죽음의 영원한 증거로 상처를 간직하셨지만 우리들의 경우는 상처가 완전히 치료되어 완벽한 상태가 될 것이라고 했다 (p. 616).
        
3. 사망에 대한 최종 승리: 우리의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우리의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그리스도의 승리에 삼킨 바가 될 것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죽은 신자들이 부활하고 산 신자들이 변화되는 것을 말하면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사망을 향해 호령을 했다 (고전 15:55). 그러면서 바울은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고전 15:56-57).

"사망의 쏘는 것"은 "사망의 독침"이다. 죄가 없으면 사망은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게 되어 있으나 죄 때문에 죄의 값으로 사망이 인간을 치명적 독침으로 쏜다.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는 것은 죄가 죄로 드러나는 것은 율법 때문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심으로써 죄와 사망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도 마침내 사망을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이기게 되는 것이다.

16년간 위튼 대학교 교수를 한 에피 제인 윌러(Effie Jane Wheeler) 박사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교수회와 학생회 앞으로 이런 편지를 보냈다. 드디어 주치의가 수주간의 진찰 결과를 알려 주었습니다. 수술할 수 없는 췌장암이라는 것입니다. 그 의사 선생님이 만일 그리스도인이었다면, 그렇게 지체하면서 알릴까 말까 주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과 제가 아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의 뜻에 따라 살면 삶도 환영하고 죽음도 환영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가 주님에게 속히 가는 것을 원하신다면 저는 기쁘게 갑니다. 다른 한편, 그리스도는 여전히 위대한 의사시라는 것을 저는 기억합니다. 그래서 소박하게 믿고 신뢰하면서 저는 그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주님, 주님이 원하신다면, 저를 완치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아주 평안하게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를 한 순간도 애도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생각하듯 저에 대해 행복과 기쁨의 생각을 하십시오.

거기 있는 모든 것, 학생 기념 센타와 그 뒤에 있는 건물들, 모든 기쁨과 경쾌함이 있는 졸업식 행사들에 대해서 여전히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차가운 안녕을 고하지 않고, 오히려 또 만납시다(auf Wiedersehen)는 따스한 안녕을 고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다가오는 가을 캠퍼스에서나 혹은 그 후에 저 복된 땅에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이라고. 여러분이 그리로 오실 때는 제가 커튼을 걷고 맞이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각자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에피 제인 윌러. 윌러 박사는 부활신앙으로 사망을 이긴 자답게 살아간 것이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확실히 발생한 사건이다. 부활 사건은 역사상의 증거나 법률상의 증거나 문헌상의 증거로 보아 도저히 뒤집어 엎을 수 없도록 확실한 사건이다. 이러한 부활 사건을 믿으면 현재적 삶과 미래적 삶이 변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면 우선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하는 선언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신비적 연합의 축복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이 능력으로 나타나서 날마다 죽음을 무릅쓰면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면 개인의 생활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근본적으로 변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면 개인적으로 변화될 뿐 아니라 부패하고 무능한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새로운 대안사회를 이루어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면 이렇게 현재적 삶이 변할 뿐 아니라 미래적 삶도 변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죽은 상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과 같은 몸으로 부활하게 되고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렇게 영광스러운 몸으로 순식간에 변화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으로 죄와 사망을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이기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한 역사적 사건으로서 그것을 믿는 자들을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변화시키되 현재의 삶도 복되게 하고 미래의 삶도 복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두고 그 역사성과 실존성 중 어느 하나를 부인하여 부활신앙을 흔들리게 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견고하게 서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구현하는 일을 더욱 힘써야 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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